부끄러운 역사의 인정

“아등(我等)은 신사(神社)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 려행(勵行)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있어서 총후(銃後)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赤誠)을 다하기로 기한다.

소화13년(1938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삼일절에도, 광복절이 되어도,

50여년간 교회를 다녔지만 일제 강점기 개신교의 신사참배에 관해 교회에서 이야기 들어 본 기억이 없다.

부끄러워서 일까?

아니면 여전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

부끄러운 역사를 수치심을 안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언젠가 반복되고 만다.

피한다고 해서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맘에 안 드는 표현들 #6

“잘사는 사람”

뭐.. 언어라는 것이 사회 구성원에 의한 무언의 합의로 만들어 지는 것이니.. 이 표현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 잘살다 : 부유하게 살다 ]

라고 되어 있으니..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근데 맘에 안 든다.

표준국어대사전에

[ 잘 :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

라고 되어 있으니.. 직역하면 “잘산다”는 표현은 사실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사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부유하게 산다”라는 의미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은연중에 “부유하게 사는” 것을 “옳고, 좋고, 훌륭하게 사는” 것으로 인식하고 우러러 보게 된 것은 아닐까?

웃긴 건.. “잘 산다”라고 띄어쓰기를 하면 원래의 의미인 “옳게, 바르게, 훌륭하게 산다”는 의미가 되어 버린다. 말이란 참…

부유하게 사는 것을 “잘산다”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면 싶다. “잘 사는” 것에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좋은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헷갈리기 때문이다.

나는… 잘 살고 싶다. 잘살고도 싶다.

어느 한 쪽을 택해야만 한다면.. 잘 사는 쪽을 택하겠다. 잘사는 것에 미련이 남긴 하지만..

맘에 안 드는 표현들 #5

“어른스러운 아이”

칭찬.. 정도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도 뭔가를 잘 해 내고, 또래보다 성숙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하는 칭찬.

가만히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다.

왜 아이가 “어른스러운 것”이 칭찬이 되어야 하는가.

아이는 “아이다우면” 되는 거다.

그 또래에 알아야 할 것을 알고, 그 또래에 행동해야 할 것을 행동하면 되는 거다.

“어른처럼” 이라는 표현은 결국 세상 풍파를 겪고 난 뒤 얻어지는 정제된 생각과 처세가 포함된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했으면, 얼마나 겪지 않았어야 할 일을 겪었으면, 얼마나 아팠으면.. 아이가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처럼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렀을까.

아이들이 아이들로 그냥 그렇게 자라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세상에 아이들이 존재하도록 만든 어른들의 책임이다.

평정을 비는 기도(The Serenity Prayer)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which should be changed,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그리고 이 두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Living one day at a time,
Enjoying one moment at a time,

한번에 하루만 살게 하소서
한번에 한 순간만 즐기게 하소서

Accepting hardship as a pathway to peace,
고난을 평화의 통로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Taking, as Jesus did,
This sinful world as it is,
Not as I would have it,

당신께서 그러하셨듯이,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제가 원하는 식으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하소서

Trusting that You will make all things right,
If I surrender to Your will,
So that I may be reasonably happy in this life,
And supremely happy with You forever in the next.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르게 이끌어가심을 믿게 하시고,
당신의 의지에 모든 것을 맡김으로
이 생의 삶에 적합한 행복을 느끼게 하시고,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누리게 하소서.

Amen.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 1892-1971)

아침이다

아침이다..
잠자던 새들이 눈을 비비고 일어나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희뿌연 안개가 지난 밤의 모든 아픔을 가리고 새로운 기쁨을 찾게 하는…
지난 밤에도 여전히 흘렀을 개울물이 여전한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어디서 밤을 새웠는지 모르지만 일찍부터 눈을 뜨고 따스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는 햇님이 있는…

아침이란
새로운 날의 시작이고,
새로운 희망의 서곡이며,
새로운 만남의 막을 올리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심포니…

맘에 안 드는 표현들 #4

“세상에는 못 먹는 사람도 많다.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라”

“몸이 아픈 사람도 많은데 건강한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등으로 대표되는 말들…

못 먹는 사람이 있으니 먹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면.. 못 먹는 사람들은 뭐로 감사해야 하지?

몸이 아픈 사람도 많은데 나는 건강하니 감사해야 한다면.. 아픈 사람들은 뭐로 감사해야 하지?

남이 갖지 못한 것, 남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내가 갖고 누리고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감사를 위해 끝없이 다른 이들과 나의 처지를 비교해야 할 거다.

남들과 비교해서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것, 더 나은 것을 감사한다면, 남들보다 없는 것, 더 못한 것은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원망할 건가?

감사는 비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의 제목을 찾는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다른 이들의 괴로움을 내 감사의 조건으로 사용하지는 말자.

맘에 안 드는 표현들 #3

“고위 …”

이해는 된다. 나름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고위” 머시기라 부르니.. 좋다. 그들이 맡고 있는 책임과 업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렇게 부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고위”가 있다는 건 “하위”도 있다는 것.

지금은 중세 봉건시대가 아니다.

특히 공직자는 국민의 “위(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고위직인데..”라는 생각으로 어떻게 국민들을 섬기겠나? 본인은 “위(高)”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아래(下)”로 생각하는데..

동물들도 나름의 위계를 가지고 군집을 유지해 나가니.. 좋다. 체계를 위한 위계는 필요한 듯 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이 주인”이라고 푯말을 내걸면서 “주인”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객기를 부리는, 소위 “고위직”은 별로 필요 없는 듯 하다..

맘에 안 드는 표현들 #2

“~ 같아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맛있었던 것 같아요”
“슬펐던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아요”
“아픈 것 같아요”..

왜?

“재미있었어요”
“맛있었어요”
“슬펐어요”
“좋아요”
“아파요”

라고 말을 못하지?

자신이 재미있었는지, 슬펐는지, 아픈지조차 제대로 판단이 안되나?

자신감의 결여? 눈치 보기? 뭐가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이야기하면서 “~ 같아요”로 끝맺는 표현은 정말 “거슬리는 것 같아요”

맘에 안 드는 표현들 #1

“명품”

명품 아파트

명품 가방

명품 지갑

명품 넥타이

명품 시계..

명품 : Masterpiece. 정말 노력해서 ‘잘’ 만든 물건. 잘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시간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여 만들며, 그렇기에 많이 만들 수 없어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비쌀 수 있다.

사치품 : Luxury goods. 비싸게 팔기 위해 만든 물건. 비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잘’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다른 제품들 보다 좋긴 하다.

요즘 미디어나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등장하는 ‘명품’이라는 표현이 정말 맞는 표현인가?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포장해서 타인보다 우월함을 과시하려는 욕망을 분출하는 것 뿐은 아닌지?

값으로는 명품을 증명하지 못한다.

명품이란 이름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평가로 주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