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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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우린 말에 실수가 참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항상 실수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가 온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도 우리 인생속에서는 온전해 질 수 없는 존재인 우리들은.. 말에 실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되는군요..
말에 실수하지 않고 살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에 실수가 없도록 살아가라고 야고보는 권면합니다.. 게다가.. 이건 성경말씀이니.. 하나님도 그걸 원하고 계시다는 뜻이군요..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가능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난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조건하에서도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계시는군요.. 이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니 할 수 있다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왜 하나님께선 우리가 전혀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온전하게 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온전함을 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노력자체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일.. 우리가 능히 해 낼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지만 그걸 우리가 해 내지 못한다면.. 우린 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못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걸 못해낸 것 자체가 부끄러움은 아닐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에 우린 노력했고.. 어차피 우린 해 낼 수 없었던 것이기에.. 그것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괴로워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막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아기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비틀거리며, 쓰러지면서도 한 걸음씩 내딛는 아기의 걸음을보고 기뻐합니다. 걷고 못 걷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딛고자 하는 아기의 모습이 이쁘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들은.. 어쩌면 우리 평생에 절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불가능한 것들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선 기뻐하신다는 사실과, 그런 우리의 필요함을 적절히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도 비틀거리는 걸음을 한 걸음씩 떼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