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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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계속해서 표적과 증거를 찾는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끊임없이 뭔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것이다 싶으면 선택을 하죠..

친구도, 배우자도, 직장도, 삶의 목표도…

어떤 증거, 또는 마음을 결정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면 우린 섣불리 결정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결정일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순간의 그 증거나 계기 역시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될 수도 있다는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다시 한 번 망설이게 합니다.

빌립은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어떤 증거를 찾고 싶었겠죠.. 지금의 우리들과 같이.. 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증거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증거…

우린 증인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이죠.. 증인은 직접 경험한 것을 증거해야 한다고들 하죠.. 글쎄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무도 없지 않나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것도, 우리가 경험했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끼워맞춘 그런 것은 아닌가요? 단지 예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일이라고 그냥 인정해 버리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심이 우리의 믿음의 한 편은 아닌지요…

실제로 예수님을 본 사람도, 실제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실제로 예수님의 기적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린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런.. 보지도 않고 증언하면 그건 위증인데요.. 심증만으로는 증언을 할 수 없죠..

글쎄요…

하지만.. 우린 증인들입니다. 왜냐면 우리 마음 속에서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마음속에서..
내 삶을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싶어하는 간절함이 있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싶은 바램이 있습니다.

우린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그 행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증거입니다… 그건 억지 아니냐구요?

아뇨..

믿음은..
바라는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만나기를 바라는 예수님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 시키는 것이고,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참 수많은 표적들을 요구합니다. 어떤 확실한 것을 보지 못하면 안심하지 못하는 우리의 속성때문이죠..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참 인자한 하나님이시죠.. 사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만으로도 우린 증거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참 수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그 증거들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빌립처럼…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던 빌립처럼..

자기가 보지 못했으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았다고 떼쓰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수많은 증거와 표시를 찾아내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조차 믿음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모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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