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전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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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 이 ‘근심’을 영어 성경에서는 ‘sorrow’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sorrow’라는 단어는 우리 말의 ‘근심’보다는 조금 더 강도가 높은 표현이네요.. ‘슬픔’, ‘비통’, ‘비탄’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회’, ‘고통’의 의미도 가지고 있구요..
우리를 참 힘들게 하는 단어들입니다.. 때로는 이런 단어들 자체가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죠.. 산다는 거..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참 힘든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sorrow’한 일이기도 하죠..
바울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까요… 우린 참 연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근심과 걱정, 슬픔과 비통함이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킬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슬프고 비통할 때는 그것을 하나님과 연관시킨다는 것 자체가 힘든 때도 있습니다..
근데.. 바울은 그 근심 조차도.. 아니.. sorrow조차도 하나님과 연관시키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 이 말 전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신도들에게 ‘근심’을 준 것을 후회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하나님의 근심’이 고린도 교회의 신도들을 회개함으로 이끌었기 때문에 감사한다는 고백을 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근심을 주십니다.. 슬픔을 주실 때도 있죠.. 하지만.. 적어도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린 역시 연약한 존재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근심때문에 힘들어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 결과는 유익함이기 때문에 근심해서는 안된다는 그런 말은 못하겠네요.. 힘들어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죠.. 여러가지 근심과 아픔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죠.. ^^;
그러나.. 힘들어 하는 가운데서도, 그 힘든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그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마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둠은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빛의 부재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정말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근심과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그 사실이 아닐까요..
우린..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