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4~26)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Romans 8:24~2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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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갖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우린 잊고 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소망을 품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걸 갖기 바라지만.. 혹시나 갖게 되지 못할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기다림은 소망에서 비롯되며.. 소망은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라.. 성령도 우리를 향해 소망을 품고 참으신다는 말일까요?

이 구절은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그저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의미로 많이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란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저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향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말이죠..

성령님은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소망.. 그것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소망을 품고 기다리며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겠죠..

우린..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소망을 품는다면 그건 내게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령님 역시.. 우리에 대한 소망을 품고 지금도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며 기대하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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