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바꾸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 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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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역사가 판단한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의 일이 아주 안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일일 수도 있고,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큰 손해를 입힐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즉.. 우리는 미래의 결과를 100% 예측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결과는 나타나 봐야 아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는 합니다만..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100%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를 모두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당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우리는 당장 그 결과를 평가할 수 없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분명하다는 가정하에서 그 모든 일은 선한 일들로 결과지어질 것임을 믿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말이죠.

문제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화 내기..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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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는 것이 나쁜 일 일까요? 아닙니다. 우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고, 웃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닌 것처럼 화내는 것 자체는 우리 사람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표현 중의 하나이므로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화내는 것이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감정적인 화가 우리를 죄악으로 이끌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옳지 못한 결과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분을 내지 마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건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고, 그 분을 계속 품고 있어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가 분을 내며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 마귀가 틈을 타 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죠..

우린.. 화내면 안된다, 화내는 것은 나쁜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화를 내는 틈을 마귀가 타고 분쟁과 상처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나쁜 것이죠..

화나는 감정을 그저 그러면 안된다고 억누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분한 건 분한겁니다. 그걸 부정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린.. 분을 품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그 틈을 마귀가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이번에 지른 것


여기저기 뒤지다가.. Panache Stylus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국내에서는 판매하는데가 없고.. 홈피에 보니 맘에 드는 놈이 하나 있어 질렀습니다.

IPAQ 3800 이상에서 기본 stylus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이 있더라구요.색상은 검은색이랑 크롬이 있는데.. 이왕 바꿀거 똑같은 검은색은 싫어서 크롬으로 샀습니다.

Stylus tip부분은 주황색으로 눈에 확 띄구요..(이거 좋네요.. ^^) 뒤쪽엔 나사형태로 돌려서 두껑을 열 수 있게 되어 있구 안에는 볼펜이 들어있습니다. 급할때 사용하기 좋겠네요..

IPAQ 본체에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크기는 기본 stylus랑 똑같구요.. 실제로 넣어보니 약간 빡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게는 기본 stylus보다 무겁습니다. 중량감이 있어 좋네요..
크롬이라.. IPAQ본체와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맘에 드네요..

주문은 이넘 하나만 주문했는데.. 펜 형태의 stylus가 하나 더 왔네요.. 공짜로..별로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

첨엔 보고 형광펜인줄 알았습니다..ㅋㅋ

결정…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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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를 마무리 하는 말씀이자 사사기에서 여러번 찾아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견으로 생각했을 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선택해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고, 그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 결정이 올바른 결정인지 아닌지는 그 순간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 결정의 결과가 나타날 때야만 비로소 그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은 참으로 신중하고도 걱정스러운 행위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절.. 사사들이 통치하던 그 속에서 정형화된 법은 없었고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실수를 하게 된 것을 사사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왕이 있다고 달라졌을까요? 아니었을 겁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보면서 왕들의 잘못된 결정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참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결정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결정이라면.. 그건 분명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도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전.. 제 소견대로 결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는지를 점검해보는 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 있고, 하나님께 민감한 상태에 있다면.. 그것이 비록 내 마음으로 내리는 결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바르게 내린다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노력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결정을 내린다면 하나님께선 분명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니까요..

내 안의 하늘나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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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내 마음 속에, 내 삶 속에 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우매함을 지적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 노력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기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이 있어야 할겁니다.

저 멀리 뵈는 하늘나라가 아닌 바로 내 속에 있는 하늘나라를 보기 위해 말이죠..

하나님은.. 바로 여기 계시니까요..

지혜?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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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십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느낌에 솔직합니다.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꺼리지 않죠. 하지만 지혜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가지고 자신들의 느낌을 표현하려고 애씁니다.

어떻게 보면.. 지혜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지혜롭고’,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지만… 어쩌면 반대가 아닐까요.. 지혜로운 자들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기 때문에 어쩌면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자들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솔직합니다…

하나님이 그 비밀을 지혜있는 자들에게 숨기고 어린아이들에게 보이시는 이유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솔직한 그 솔직함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밀을 자신의 지혜와 슬기로 해석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보여주시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어린아이들의 그 솔직함 말입니다..

지혜롭다구요? 정말인가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세상의 지식을 많이 아는 것으로 지혜롭다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샬롬…

가까이 있는 말씀..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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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잘 아시죠.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우릴 만드신 분이시니까요. 그것도 우연히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하나에서 세포 하나 하나까지 직접 설계하시고 만들어내신 우리의 창조주이시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우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 심지어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모습조차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하지 못할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을테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습니다. 내가 입으로 시인하며 그 말씀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그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리한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지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는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의 의지로 지켜나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속에 거하는 삶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함..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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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든..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며,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열릴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나 봅니다.

다른 어떤 칭찬의 말 보다도 베드로의 이 한마디가 예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으니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 머리 속에 그려진 모습이나,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가장 훌륭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만, 그건 예수님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망각..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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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잊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우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요..
하나님이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거..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한 번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고백을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사실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그 손길을 철저하게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았다..라고..

내가 고통중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될때.. 그 때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시며..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니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함..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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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좋은 일이라면.. 꼭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더라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이스라엘의 산파들은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들을 살립니다. 아마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애굽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바로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서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을 알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직면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일이라면.. 우린 분명 그것에 대해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내게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면.. 모세는 태어나자 마자 죽었을 것이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지 못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앞에 나서지도 못했겠죠..

현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임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