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내어준다

베를린이 분단되어 동 베를린은 공산치하에, 서 베를린은 자유진영이 되었을 때이다.

일단의 동 베를린 사람들이 한 트럭의 쓰레기 더미를 서 베를린 진영으로 쏟아부었다. 서 베를린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모아 트럭에 실어 다시 동쪽으로 내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기로 정했다. 오히려 덤프트럭 한 대에 통조림과 또 쉽게 부패하지 않을 식량을 채워 동 베를린으로 가서 그것을 산뜻하게 쌓은 후 그 옆에 표시판을 하나 세웠다.

“사람은 각자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내어준다.”

무엇을 보느냐…

미국의 어떤 소년이 길에서 5달러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는 그것을 줍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행여 또 그런 일이 있을까 하여 땅만 쳐다보고 다녀 그만 이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다.

그는 일생동안 길에서 물건을 줍는데 큰 취미가 생겨 그가 주운 것을 보면 단추가 29,519개, 머리핀이 54,172개와 수천개의 동전, 그 외에 수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주웠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줍느라고 푸른 하늘이나 지상의 꽃과 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기회를 많이 잃었다. 결국 넝마주이 인생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된다…

비난

서부 개척 시대였습니다. 지금도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횡단하려면 기차로 쉬지 않고 일주일을 달려야 합니다. 그러나 서부 개척 시대에는 삼십일에서 사십일이 걸렸습니다.

서부에 살 길이 있고 서부에 황금이 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서부로 서부로 대이동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보통 한 달 이상이나 여행하느라 몹시 피곤하고 지쳐있는데, 도중에 한 젊은 청년이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기차에 탔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지 않습니다. 잠 좀 자면서 쉬려고 했던 사람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은데 아이가 울어대니까 화를 낼 수 밖에 없습니다.

참다 못한 사람들 가운데 한 성미 급한 남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 청년을 향해 큰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여보시오! 아기를 데리고 다니려면 엄마를 데리고 다녀야지, 왜 남자 혼자 안고 다니며 울리는 거요?”

그러자 그 청년이 일어서서 그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아이 때문에 피곤하신 여러분이 쉬지 못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 이 아이가 엄마를 따라 다녀야 되지만… 제 아내가… 어제 죽어서… 오늘…. 고향으로 장사지내러 가는 길입니다.
화물칸에 제 아내의 시신을 싣고 가는 중인데….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겁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기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마옵시고,
위험에 처하여도 겁을 내지 말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고통속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옵시고,
고통속에 처하여도 그 고통을 이길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료자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게 하옵시고,
인생과 싸워서 이길 스스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근심스러운 공포속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게 마옵시고,
공포를 내가 싸워서 이길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겁장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너무너무 내가 기쁘고 성공했을 때만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고 생각하게 마옵시고,
매일매일 내가 슬프고 괴롭고 남이 나를 핍박하고 내가 배고플 때 하나님이 내 손목을 꼭 잡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멘.

– 타고르

수해현장을 보고…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휴가라.. 집에 다녀왔습니다..

저희 집이 김해시 한림면이거든요… 귀에 익죠? 이번 수해로 난리가 난 동네입니다.. 다행히 저희 집은 피해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

다만.. 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가다가.. 수해를 입은 지역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끔찍하더군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과.. 안타까움과.. 수재민들에 대한 동정심으로 눈물이 날 정도였습니다..

수해를 당한지 열흘이 넘었지만.. 아직도 반쯤 물에 잠겨있는 집이며.. 가로수와 전신주 덕분에 길인 줄 알 수 있는 침수된 도로.. 수마에 의해 그대로 내려 앉아버린 집들.. 아직도 물에 잠겨있는 논이며.. 물은 빠졌지만 흙에 뒤덮여버린 논들..

무엇보다 가슴아팠던 것은.. 물가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수재민들과.. 지친듯 고무보트 주변에서 쉬고 있는 구조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창 밖을 쳐다보기가 미안하더군요..

뉴스에서 볼 때는.. ‘큰일 났구나.. 저런..’ 정도의 반응으로 끝났었지만.. 그 상황을 실제로 눈으로 보니.. 뭐라고 할 말이 없더군요.. 당해보지 않은 우리들로서는.. 그저 동정심과 안타까움을 표현할 수 밖엔 없지만.. 실제로 집을 잃고 1년간 수고한 결실을 모두 빼앗겨 버린 농민들의 마음은.. 열심히 키워왔던 가축들을 모두 잃고 만 사람들의 그 아픔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 자연재해라면 또 정말 불가항력적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라도 해 보겠지만.. 자연재해에 인재가 겹친 이 상황에서는.. 그런 위로조차도 못할 것 같더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얼마 없겠지만.. 나름대로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말 마음이 아프군요.. ㅡㅡ+

눈물에 얼굴을 묻는다.. -원태연-

작성자 : feel so good

너의 목소리, 눈빛, 나를 만져주던 손길,머릿결

부르던 순간부터 각인 되어버린 이름

어쩌면 재앙과도 같았던 사랑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그렇게 중독되어 갔다

니가 조금만 더 천천히 울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 때

너의 눈물에 손끝조차

가져가 볼 수가 없던 그 때

단 한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이유로

살점을 떼어내듯 서로를 떼어 내었던 그 때

나는 사람들이 싫었고 사람들의 생각이 싫었고

사람들의 모습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사랑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게 서로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뿐인 사랑을 지켜내지 못했었다

마지막임을 알고 만나야 했던 그날,

얼굴을, 목소리를, 상처를, 다시 한번 각인 시켰던그날,

너를 보내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었던 기도를

하얀 눈이 까맣게 덮어 버렸던 그날,

이제 나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성격으로 이런 환경으로 태어나

그렇지가 않은 너를 만난 죄

니가 나를 사랑하게 만든 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그것뿐이었던 죄

그렇다면 이모든 나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도 살아있음에 미련이 없음이

나를 더욱더 가볍게 만들어 준다

의미를 남겨두고 싶어 올려다본 하늘에

눈물에 얼굴을 묻던 너의 모습이 아련하게 스쳐간다

내가 태어나던 날의 하늘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소녀에서 여자로.. (캐논 이야기)

작성자 : 신혜영

저는 아파트 8층에 살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는 제가 13살때 입주를 시작하였지요.
맨날 콩알만한 연립주택에 5식구가 아둥바둥 살때는 몰랐는데
여기로 이사를 오고나니까 이렇게 좋은곳도 있구나 … 했지요 그땐..
지금은 이 아파트도 고령이군요..
그때 저희 아파트 9층에는 어떤 오빠한명이 살고 있더랬어요.
중학교 3학년 어느 봄이었어요.
그날도 아침에 학교에 가려구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9층오빠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그때 오빠는 고등학생이라서 학원 같은반 남자애들이랑은 달리
머리가 조금 길었었는데..
감고 미쳐 말리지 못한 살짝 젖은 머리와 풍겨오는 샴푸냄새…
처음 이었습니다.
‘남자….
남자구나…’
초등학교때 친구들이 반에서 누구는 누구 좋아하고 재네둘이는
서로 사귄데요..
그런 말들이 순식간에 스쳐갔습니다.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는게 무엇인지… 그땐 미쳐 몰랐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오빠가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가
눈앞에서 사라질때 까지 한참동안 멍하게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었습니다.

9층에는 아주 좋은 피아노가 한대 있었습니다.
9층에는 오빠만 있는게 아니라 언니도 한명 있었는데
그 언니가 피아노를 전공했었거든요.
그런데… 저희 아파트에선 다 알았습니다.
지금은 언니가 피아노를 치는지 오빠가 피아노를 치는지..
오빠는 꼭1곡 밖에 칠줄 몰랐거든요. 그곡이 무슨곡인지도 한참이 지나고야
알았지만…
아무튼 제가 학원 갔다오면 언제나 간식먹을 시간에 오빠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학원 다녀오면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아파트에선 피아노 치는걸 금지하는 시간인데 그 오빠만은 피아노를 치도록 허용이 되었습니다.
신기하죠? 무슨수로 아줌마들을 구어 삶았길래…
아마도 너무나 아름답게 그 곡을 쳤기 때문이 아닐런지.. 지금 생각도 해봅니다. 묵시적 허락이라고나 할까요?
아파트 사람들은 그 시간만 되면 으레 오빠가 피아노 칠 걸 알았고
저도 그러했으니까요.

아줌마들은 오빠를 참 좋아했습니다.
아줌마들은 가끔 오빠를 보면서 ‘ 저눔 성격도 좋구 인물도 훤한기.. 여자 꽤나 울리겠다.’
놀렸고, 오빠는 ‘공부는 잘 못하자나요’라고 대답했죠.
사실 오빠는 공부는 좀 못했나 봅니다. ㅋㅋ
그래도 아줌마들은 ‘머이 성실하쟈녀~~’ 했죠.
사실 오빠랑은 엘리베이터를 탈때 인사만 했지 그밖에 대화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빠가 어떤사람인지 그 집에서 무슨일이 있는지는 아줌마들의 입을 통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오빠는 … 꿈이 있었습니다. 오빠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먹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저의 관념을 처음으로 깨어준 사람이 오빠이기도 했지요.
아무튼 그날 이후론 오빠의 피아노 소리가 가슴 깊이 울렸고, 일부러 오빠를 만날만한 시간에 심부름도 자주 다녔고.. 아줌마들의 이야기에도 더욱 귀를
기울여 듣게 되었습니다. 하루중에 간식먹는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드디어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저도 머리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오빠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습니다.
‘안녕하세요?’ ‘ 어.. 안녕?’
…. ….
‘샴푸냄새가 좋구나….’

그날.. 학교에서 선생님의 머리묶어라는 모진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머리를 묶지 않고 개겼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드디어 고백을 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해 5월에 정성스럽게 편지한통 초코렛 한통을 사서 내 맘을 곱게 담았습니다. 내일엔 꼭 고백을 해야지…그리고 맘을 진정시킬겸 다음날 체육시간에 줄넘기 2단 20번 달아뛰기 시험 연습이나 하러 가야겠다 하고 줄넘기를 들고 나갔습니다.
저는 같은 아파트 다른동에 사는 친구를 불러내어 줄넘기를 연습을 한창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줄이 꼬이더니 앞으로 확 넘어졌는데 정말 쿵하고 무릎과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진걸 느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기저기 피가 철철철~~
아..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9층오빠가 달려와서 피를 닦아 주었습니다. 이게 웬 망신이람… 몰랐는데 코피까지

흘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 한순간 바보가 된 나…
다음날부터 저는 고백은 커녕 너무 부끄러서 도무지 9층 오빠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피해다니기를 2
달째..
어느날 학교 갔다와서(고등학교때는 야자때문에 늦게 마치니까 학원은 갈수가 없었거든요.) 간식 먹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 엄마 9층오빠 어디 갔나보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네?’
‘ 어머 얘는.. 9층 서울로 이사갔자나’
(참고로 저는 부산에 살고있습니다.)
그날밤… 사람이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릴수도 있구나… 싶을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가슴에 잘 묻어둔 체로 제게도 20살의 봄이 왔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선 후배간 소개가 있고 나서 얼싸하게 술자리가 펼쳐졌는데 저는 술을 못해서 콜라만 홀짝 홀짝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 쪽에서 저랑 똑같이 콜라를 홀짝 거리고 있는 지금은 군대가 있는, 친구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자연히 같이 콜라를 마시는 사람끼리 같은 table에 앉게 되었고,
‘너 집이 어디라구?’
‘응.. oo동’
‘어? 나두 그 근천데 어디야?’
‘어 그래? 난 O아파튼데 너는?’
‘어, 우리집 그 아파트 밑에 S아파튼데… 이야~~ 이웃사촌이네.
참 그러면 혹시 너 oo형 아냐?’
…. 그오빠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래도 설마.. 설마 그 오빠일까 싶었는데.. 그 오빠가 맞았습니다.
그 친구도 그냥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내가 그 사람을 아니까 무척이나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구 제가 그 오빠 바로 아래층에 살았다고 하자. 그 친구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술이 확깬듯한 표정으로(술도 않먹었으면서..) 한동안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한 일주일쯤 지나고 그 친구랑 우연히 집앞 빵집에서 만났습니다.
집에 돌아오는길 그 오빠의 얘기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9층오빠랑은 유치원때부터 교회 형 동생 사이로 서로 남자 형제가 없어서 각별히 사이가 좋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멀리 대구에서 이사를 왔지만 9층 오빠는 원래 그 근처에 살던 사람이었나 봅니다.
9층 오빠가 이사를 와서 처음으로 교회를 가던날,
왠 초등학생 여자한명이 머리에 빨간 머리핀을 꼽고 손에 성경책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어찌나 귀엽게 자기를 보고 인사를 하던지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고 했습니다.
어느날은 집앞 레코드 가게를 지나는데
그 여자애가 우두커니 가게 앞에서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며
꼼짝도 안하고 있는걸 발견했는데, 그때 흘러나오던 곡이 “canon”이었데요.
그후로 교회에서 그 오빠가 그 곡을 연습하고 있는 장면은 자주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자기의 꿈이 확실해 졌다며 무척이나 기뻐하는 형을 발견했는데 형은 늘 ‘아무래도 자기는 공부에는 흥미가 없는것 같아 고민이야’라고 했었데요.
그런 오빠에게도 딱하나 자신있는게 있었는데
오빠는 아주 음식을 잘 만들었습니다.
특이하게도 남자가 요리하는거나 좋아한다구
자기도 별로 탐탁치 않아 했는데 ,
하루는 여자애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오빠가 만든 빵을 먹으면서 ‘이야 정말 맛있다. 오빠도 하나 드셔볼래요?’
하며 자기가 만든 빵인지도 모르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았답니다.
그 뒤로 자주 그런 간식거리를 만들어서 이웃사람들과 나눠 먹었으면서
앞으로 무엇이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 소녀가 고등학교에 가고…
어느 5월 9층 형은 누나 심부름으로 우유하고 아이스크림 사러
슈퍼에 갔다오다가 여자애가 줄넘기 하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모습을 보았다고 그러드랍니다.
너무 놀라서 이렇다 할 겨를 없이 여자애 피를 닦아주고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다 주고는 여자애가 많이 않 다치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계기로 자기 맘을 들켰는지 여자애는 자기를 피했고, 거기다 집이 갑자기 아버지 사업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이렇게 그 형의 아픈 첫사랑이 끝나고…
형은 지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을 가있다고 얘기 했습니다.
6년쯤 후에나 돌아올 거라고….
다시 그런 귀여운 미소를 짓는여자를 만나면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말하더랍니다.

그렇게 제 첫사랑은 마음깊은곳에 그 뒷이야기와 함께 다시 묻히게 되었고,
20살의 봄도 지나고….
소녀는 여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