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두려워함..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출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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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정말 좋은 일이라면.. 꼭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더라도 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이스라엘의 산파들은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이들을 살립니다. 아마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애굽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바로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었을 것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으로서 애굽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마음 내키는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을 알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직면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좋은 일이라면 다행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일이라면.. 우린 분명 그것에 대해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내게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이죠..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면.. 모세는 태어나자 마자 죽었을 것이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지 못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앞에 나서지도 못했겠죠..

현실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하나님임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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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우리는 흔히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우리가 흔히 하나님의 일이라고 표현하는 그것들은 대체로 ‘교회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봉사, 전도, 기도, 찬양하는 것을 우린 ‘하나님의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유태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드리는 것이라고도,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라고도, 전도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시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보내신 자 곧 예수님 당신을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는것이 나을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과 부유함, 좋은 옷을 부모님께 드린다고 해서 효도를 다했다고 할수 없듯이 우리가 열심히 일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을 반드시 기쁘게 해드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음식과 좋은옷은 있지만 부모님과 대화도 없이 살아가는 자녀보다는 물질적인 것을 채워드리지는 못해도 그 마음을 기쁘게 하는 자녀가 참 효도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좋은 음식, 좋은 옷과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 두가지가 다 함께 병행된다면 당연히 가장 좋은 것이겠죠.. ^^

어쨌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바쁘게 뛰어다니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해서 소홀하는 것보단 하나님을 인정해드리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좋은 음식보다는 자녀와의 한마디 대화를 더 행복하게 생각하는 부모님처럼, 하나님의 일은 기도도,전도도,봉사도,희생도 아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것에서 시작한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하루이고 싶습니다.

평강..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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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구할것을 아뢰면 들어주실 것이라고 말하는것이 맞을텐데 바울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실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다만 평강이 있을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필요를 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100%다 이루어 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심으로 우리의 불안과 욕심을 다스릴수 있게 하십니다.

내가 구한것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는 마음을 소유한 부자로서 살아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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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무시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해낼 수 있지만, 그것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임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기드온이 자신과 함께 할 군사를 모을때 너무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힘에 의해서라는 교만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법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도우시며, 그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샬롬..

죄를 다스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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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그것도 형제간에 있었던 가인과 아벨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자기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데 동생의 제사는 받는 것을 보고 마음에 분노를 품은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죄악중에 잉태되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분명히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건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우린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죄를 지을 것이냐 아니냐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하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는 것보다는 마음에 있는 죄의 소원을 따르는 길을 택했고.. 결국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를 다스릴 것이냐 아니냐는 나의 선택입니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죄의 소원은 내게 있으나.. 그 죄를 다스림으로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떳떳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화목의 조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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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의 조건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고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권력을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음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비록 가난하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죠..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더 나은 것을 보고 그것을 향해 앞으로 나가지만 처해있는 현실을 비관하지는 않는 것..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아닐까요..

화목은.. 가족이 서로를 인정해 주고 서로를 아껴줄 때 생겨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시기하고 다투는 가족이라면 아무리 해도 화목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는.. 알고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그것을 삶으로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둔한 마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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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둔해진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연인 시절에는 서로 얼굴만 봐도 좋다가.. 결혼하고 수십년을 같이 살다보면 아무래도 서로에 대해 조금씩 무감각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헉.. 마치 결혼해서 수십년 지난 사람같은 소리를… ㅡㅡ;)

그렇기 때문에 그러지 않고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시는데 반해.. 우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께 둔감해져가고 있지나 않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일반적인 모습들 때문에 마음이 둔해져 하나님께 민감해지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재림의 날이 축복이 아닌 덫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린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 보다도.. 하나님께 민감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민감함이 둔해지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억하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눅 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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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기뻐하는 하루였습니다.
근데.. 아직도 우린 살아계신 하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예수님은 분명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을 기억하고 믿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나서야 그 말씀을 기억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그 당시 풍습에 따라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 돌아가신 예수님을 떠나 숨어있었던 제자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완전히 믿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움직였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상식을 깨뜨려 버리신 것입니다. 어쩌면 부활의 또 다른 의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의 상식과 경험, 우리의 계획과 지식을 깨뜨려 버리는 일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믿고 따르는 부활절이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분명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고 그대로 살아나셨지만, 자신의 생각과 상식, 경험에 갖혀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고, 그 말씀들을 기억하고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그런 믿음을 키워나갈 수 있는 부활절이길 소망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막 4: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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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신 뒤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야기 하시기 보단 비유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지어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막 4:34)라는 말씀까지 기록되어 있을 정도이니까요..

사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접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하나님의 뜻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깨닫고 유추해 내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때론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죠..

예수님은 여기서… 무엇을 듣는지 스스로 삼가고 내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의 뜻을 조심해서 해석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우린.. 수많은 ‘징조’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순수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눈과 내 생각과 내 경험에 의해 걸러진 것임을 인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린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러므로 내게 들려졌다고 생각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과 느낌 그대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깨닫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수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연습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그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다른 무엇보다.. 그 순간의 내 느낌이나 감정, 주변의 상황에 얽매여 하나님의 뜻을 잘못되이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하나님께 민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 하나님께 민감하기를 기도합니다…

깨끗한 구유?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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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소가 없다면 구유가 더러워질 일도 없을테고.. 구유를 깨끗하게 하는 노력도 필요없겠죠. 하지만 소가 있음으로 얻을 수 있는 많은 유익 또한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구유를 깨끗하게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소가 있음으로 얻는 유익이 그 수고에 충분한 보상이 된다면 얼마든지 수고를 감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건.. 경영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죠… 투자하는 것이 당장은 손해인 듯 보이지만.. 그것이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확실하다면 투자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소의 힘으로 얻는 유익은 얻기를 원하면서 구유를 깨끗하게 하는 수고는 하지 않으려고 하는 때가 많습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부터..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병폐중의 하나가 이 ‘공짜주의’라고 지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해 주는 것은 ‘공짜’ 내지는 ‘아주 저렴한’것이어야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 교회에서 해 주는 것은, 또는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공짜’여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그걸 ‘헌신’과 동일시 하는 잘못된 생각이 교회를 병들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교회에서 어떤 회사에 일을 시킬 때도.. ‘헌신’이라는 미명하에 ‘공짜’를 요구하기도 하고, 교인들도 교회의 일이라면 당연히 ‘공짜’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정당하게 지불할 가치를 지불하고 거기에 따른 것을 취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소의 힘은 얻고 싶지만, 구유를 깨끗하게 하는 수고는 하고 싶지 않다는 소위 ‘놀부심보’가 사라지고, 정당한 가치를 정당한 대가를 주고 얻을 수 있는 공의로운 모습이 우리 속에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