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얼굴..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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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이러니컬 하게도..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어질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신체가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울이라는 도구가 있어 스스로의 얼굴을 볼 수 있지만.. 그런 도구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울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말이죠..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본다고 해도.. 항상 거울만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의 모습을 항상 기억하고 살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는 것도 비슷한가 봅니다. 들을때는 깨닫고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러고 나면 곧 잊어버리니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기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도를 듣기만 하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린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겠죠. 그건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잘못된 자기의 형상을 가지고 자신이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속에서 잘못된 형상을 만들어내게 되는 사람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게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치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더디 하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약 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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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안다는 거.. 그건 참으로 귀한 능력입니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줄 알고.. 그 사람의 마음을 포용해 줄 줄 알면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게 되죠..

자신의 말을 많이하고.. 마음속에 분노가 있으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게 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게 됩니다.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사람을 대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이나.. 마음속의 분노를 풀고 사람을 대하면 하나님의 의로 그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참 당연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장 다스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되.. 내 의견을 주장하고 분을 품는데에는 한 걸음만 속도를 늦추면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는데, 그러지 못하면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의 의를 막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말이죠.. 그럴 때마다 다시금 스스로를 돌아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의를 나를 통해 이루시려고 하는데.. 내가 그것을 막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꿇어엎드립니다.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가 가려지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해 달라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제 갈길을 묵묵히 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거친 삶의 벌판에서
언제나 청순한 마음으로 사는
사슴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아침 햇살 투명한 이슬로 반짝이는 사람
바라다 보면 바라다 볼수록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갈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 하나
곱게 간직하고 싶다.

– 롱펠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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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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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보다 더 간절히 바라기는..
나 자신이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더 순전하고 더 넒은 마음과 온유함을 허락하셔서..
내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그 사람을 가슴 가득 품어줄 수 있기를…

교만함…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3:10)
Pride only breeds quarrels, but wisdom is found in those who take advice(Proverbs 13:10,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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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함이란.. 잘난체 하는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교만함이란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교만함이란..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모습을 바르게 보지 못함입니다. 할 수 있는데도 ‘저는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겸손함이 아닙니다. 그건 교만함입니다. 할 수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도 교만함입니다.

스스로가 만든 자신의 생각, 자기 자신이 만든 자신의 모습의 틀에 사로잡혀 스스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교만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성격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 역시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스스로가 세운 자신만의 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 교만함에는 다툼이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은 이런 모습인데 남들은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하니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고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권면을 듣고 그것을 자신의 모습에 반영할 줄 압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알고 자기만의 틀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어떤 것이 바른 것인지 결정할 때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결정내리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기 스스로가 결정합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고자 노력합니다..

참 오랫동안 이런 교만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만들어낸 세상속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교만함이 내 속에 분명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내 생각에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건 교만함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역시 교만함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함께 느끼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나 자신만의 세계속으로 빠져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옳다고 말을 해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주관이 뚜렷한 것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교만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 앞에 나의 교만을 모두 내려놓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교만함을 깨뜨려 주시고.. 나를 지혜롭게 하셔서 다른 사람의 권면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도록..

소망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4~26)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But if we hope for what we do not yet have, we wait for it patiently.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Romans 8:24~26,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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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갖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우린 잊고 삽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소망을 품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집니다.. 그걸 갖기 바라지만.. 혹시나 갖게 되지 못할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기다림은 소망에서 비롯되며.. 소망은 현실을 만들어 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라.. 성령도 우리를 향해 소망을 품고 참으신다는 말일까요?

이 구절은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지만.. 그저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의미로 많이 인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란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저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향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소망을 품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말이죠..

성령님은 우리에게서 찾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소망.. 그것이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며 소망을 품고 기다리며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겠죠..

우린..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소망을 품는다면 그건 내게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성령님 역시.. 우리에 대한 소망을 품고 지금도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며 기대하고 계시니까요..

소망?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집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로 돌아와서 처음과 같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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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애써 부인하려고 해도.. 사람은 근본적으로 보이는 것에 소망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보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소망을 품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의 침략으로 무너져버리고 황폐해져 버린 예루살렘을 보면서 모든 소망을 다 잃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곳이 다시 재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은 그들로서는 품기 힘든 소망이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 성읍은 무너졌으며, 성전역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폐함 뿐이었으며 거기에서는 어떤 회복도 기대할 수 없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애초부터 회복시키시기 위해 그 땅을 치셨습니다. 그냥 두면 회복되지 못할 부분이 있었기에 기초부터 흔드시고 그 이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회복시키시는 작업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소망을 품지 않았지만.. 아니.. 소망을 품을 수 없었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셨고 이루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소망이 없을때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회복을 시키시고 계십니다… 치유하실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기렵니다. 내 경험과, 내 생각과, 내 마음으로는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기에.. 아니.. 이미 시작하신 일이시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렵니다…

형제의 참 사랑을 위한 기도

내가 나만 쳐다보다가
내 수렁에 스스로 빠지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을 넓혀 주시고
내 뜻을 높게 해주소서

나를 넘어선 따뜻한 시선으로
하나님 당신과 이웃을 보게 하시고
형제가 당하는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무릎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소서

나에게 베풀어진 형제의 사랑을
셈하지 않게 해주시고
내가 베푼 사랑을 과장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지켜주소서

슬프고 괴롭고 섭섭한 순간들조차
내 사랑이 닿지 못한 높이와
내 사랑이 펴지 못한 넓이의
쓸쓸함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이 심어주신 척박한 땅에서
당신이 불러주신 공동체 안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빛깔로
형제의 참사랑을 꽃피우게 하소서

오직 하나인 목숨
이승의 남은 햇살을
서로 사랑함으로 불태우게 하시고
화해와 일치의 도구로 쓰이게 하소서

주여, 오늘도
더욱 사랑하지 못한 아픔으로만
참회하는 영혼이게 하시고
흠뻑 젖는 가슴이게 하소서

아아-
사랑 때문에만
오로지 사랑 때문에만
이 생명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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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도 목사님의 시 입니다…
이 기도가 오늘의 나의 기도로 마음속에 자리잡는 것은.. 그저 이 기도가 감동적인 기도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앞에서 참회하고 꿇어 엎드리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울부짖고 몸부림쳤던 최일도 목사님의 그 모습과 그 마음이 지금의 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칩니다…

주여, 오늘도
더욱 사랑하지 못한 아픔으로만
참회하는 영혼이게 하시고
흠뻑 젖는 가슴이게 하소서…

하나님의 마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Philippians 2:5,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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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아니.. 솔직히 자기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내 마음 속에 품을 수 있겠습니까..

‘네 이웃의 마음을 받아들여라..’라는 말씀을 하셔도 할 수 없다고 말할 터인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품으라는 정도가 아니고.. 예수님의 마음과 똑같아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이 말씀을 제게 주시면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품도록 노력해라’, ‘한 번 품어봐라’가 아니고.. 그 마음을 품으라고 말이죠..

그 마음은.. 겸손의 마음입니다. 낮아짐입니다. 낮아지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가서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인간으로 오신 그 겸손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낮아지는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스스로의 존귀함을, 스스로의 가치를 모두 부인하고 포기하고 내어버리는 마음입니다. 자존감을 낮추는 것과는 다른 것이죠. 내 마음속에 있는 많은 욕심들을 모두 내다 버리고 예수님이 낮아지셨듯이 낮아지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난 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 할 수 없습니다. 내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도 품어주지 못하고 이해해 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하느냐고 하나님께 되물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때 가능하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빌 2:1)이라고 바울은 말을 시작합니다. 그냥 그러라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면과 사랑과 위로와 성령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united with Christ’라고 표현되는군요.. 예수와 연합된 속에서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당연한 진리..

그걸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할때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예수님과 연합될 때 예수의 그 마음을 내 마음으로 품을 수 있다는 진리를.. 머리속으로만 알고 있었고 내 삶속에서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주인으로 모실때.. 내 속에 겸손이 이루어지고.. 그때 비로소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진리를 왜 이제야 마음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그 겸손한 마음을 내 마음에 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근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7:10-11)

근심이 생겼습니다. 그 근심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근심하고싶지 않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힘듭니다 하지만 그 근심이 나의 감사의 제목이 되는 것은 그 근심으로인해 하나님앞에 엎드리게 되고 회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다시 점검하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게 되었습니다 내 잘못들과 내 부족함들을 하나님앞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마음의 변화가 나라는 인간의 본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것입니다 완전한 변화는 있을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내게 변화가 있을것을 기대합니다
그것은 간절함이요 변명하게 함이요 분하게 함이며 두렵게함이고 사모하게 함이요 열심있게 함이며 스스로를 벌하게 함입니다
이 근심은 하나님의 뜻임을 믿기에 내 속에 회개를 이루시고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하실것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