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답..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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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영원한 궁금증일지도 모르는.. 그 의문에 대한 약간의 답입니다..
이 시편을 노래한 아삽은 그의 시편에서 어떻게 악인이 더 평안하고 재물이 더 많을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의문을 표시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을 봐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일한 만큼의 대가조차도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도리어.. 정직하고 성실하려고 하면 그건 바보같은 짓이라고, 자기것도 챙기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손가락질 받기도 하는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아삽은 하나님께 한참을 기도하던 중에.. 스스로 그 대답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현재 제대로 서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언제 미끄러질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면 됩니다.. 그것이 때로는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승리하게 됨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악인들의 결과는 결국 ‘미끄러짐’임을 사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다르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아삽 역시.. 악인들의 번성함을 보고 실족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도, 악인들의 말로를 몰라서도 아닙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과 그걸 현실로 받아들이는데에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삽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그 해답을 찾아내고 결국에는 자신의 우매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확실한 답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믿되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가운데서 우리의 믿음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문 밖의 예수님..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한창 심할 때에는 흑인과 백인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한 작은 흑인 소녀가 있었는데 이 흑인소녀는 예수님을 무척이나 따르고 사랑하는 소녀였습니다. 그 소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해 주며 살아갔습니다.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 되었습니다. 그 날도 흑인 소녀는 성탄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이 다 되었을 때까지 일을 하게되었습니다.

흑인 성도들의 예배장소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에 소녀는 생각다 못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희고 멋진 백인교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때는 흑인이 백인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시대였으나 소녀는 예배를 드리고 싶었기에 용기를 내어서 백인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예배가 시작되는 종이 울리고 찬송이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녀는 교회에 들어가려 했으나 흑인 소녀를 본 백인들은 교회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흑인 소녀는 그만 어쩔 줄 몰라 서서 울어버렸습니다. 안에서는 계속 찬송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아라 얘야.. 나도 지금 못들어가고 있단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세요~

2003년은 양의 해 입니다.. 양은 순하다고들 하죠..

뭐.. 전 사실 양을 실제로 본 적이 없고.. 길러본 적도 없기 때문에 양의 습성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양이 순한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양을 본 사람이 다 그러거든요.. ^^;

양은 온순함과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효의 상징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어미 젖을 빨 때 무릎을 꿇고 빨기 때문이라는군요..

하지만 양은 게으르고 멍청하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을 기를 때 그 무리 속에 염소를 한 마리 넣어 놓는다고 하죠.. 염소가 이리치고 저리치고 하면서 양들이 움직이게 한다나요.. ㅋㅋ

어쩌면 그 게으름이 양이 온순하게 보이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나 싶긴 하군요.. ^^;

어쨌든.. 2003년은 양의 해 입니다.. 양처럼 온순하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위해서 노력하시는 고마우신 우리 부모님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때로는 양처럼 멍청(?)해서 누가 옆에서 툭 치고 지나가도, 내 뒤통수를 치더라도 그냥 히죽웃고 마는.. 그래서 우리 속에 분쟁과 미움보다는 평화와 사랑이 넘칠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쎄요.. 어차피 누군가가 당해야 하는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 당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

어찌됐든.. 새해 복 마니마니 받으세요~ *^^*

한 발짝..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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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이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예로 드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

우리는 우리의 ‘길(course)’을 마음으로 ‘계획(plan)’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걸음(steps)’을 ‘결정(determine)’하신다..

그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생각하던 저로서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 이 대조의 구문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계획’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결정’하십니다..

뭐.. 사실 말이란 하기 나름이지만.. 이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린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길’이라는 것은 그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길만 바로 따라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디로 걸음을 옮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솔로몬이 왜 우리의 계획은 ‘길’이고 하나님의 인도는 ‘걸음’으로 표현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끝을 생각하며 우리가 가야할 ‘길’만을 생각하는 반면, 하나님은 우리의 끝을 미리 정해놓으신 것이 아닌.. 우리의 ‘걸음’ 앞에 한 걸음 앞서 가시면서 우리의 걸음 걸음을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이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큰 계획은 변함이 없겠지만.. 그때 그때 우리의 걸음을 결정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치 앞도, 단 1분 후의 일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들이 사실 우리의 ‘길’을 ‘계획’한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우리의 앞날을 준비하고 계획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지금 내디디는 우리의 조그만 발자욱 하나하나 역시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한 발자국의 깊은 의미를 알고 계십니다..

색안경을 낍시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시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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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자신을 보고 기억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봐 달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흔히 본질과 다르게 보는 것을 ‘색안경을 낀다’고 표현하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

하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비라는 색안경을 끼고 우리를 보지 않으신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 우리를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은 보시지 않고 우리를 의인이라 칭하여 주셨습니다..

글쎄요.. 우리가 서로를 볼 때 이런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좋게 보는 것은 좋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본질을 바로 보고 그 사람에게 필요한 충언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눈에는 사랑과 용서라는 색안경이 씌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돌하게도 보이는 이 다윗의 기도는.. 분명 우리의 솔직한 기도일 것입니다.. 하나님.. 내 죄는 기억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봐 주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 솔직한 다윗의 기도를 본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웃들을 보는 내 눈 앞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라는 색안경을 올려놓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방법..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왕상 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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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강한 바람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속에도 있지 않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있는 것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바람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임하시기도 하겠지만.. 죽기를 갈구했던 엘리야의 앞에 나타난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와도 같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어쩌면 엘리야는 바람처럼, 지진처럼, 불처럼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자신의 대적들, 아니.. 하나님의 대적들을 완전히 쓸어버리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로 다가오셨습니다..

우린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억울함이나 우리의 어려움을 통쾌하게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며 마치 영화속의 영웅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요..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하십니다. 설사 그것이 우리의 욕심에는 차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임을 우린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심이나, 우리의 바램대로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왕상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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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의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 선지자 엘리야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세벨의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 도망하다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능력있는 선지자였으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눈으로 본 엘리야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연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우린..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우리 인생의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그 속에서 때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쓰러지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때론 그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보다 우리를 더 힘들게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지키시고,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자기를 죽여달라는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먹을것과 휴식으로 응답하십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응답이시겠죠..

우린.. 한없이 연약합니다. 우리의 굳은 의지나, 우리의 경험과는 상관없이 현재 우리를 둘러싼 어려운 환경과, 때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쓰러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이겨나갈 힘을 주십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작성자 : 정재식

이브날인데… 바쁘신가요?
전 바빠도 안바쁜것처럼 행동하고 있슴다..ㅎㅎ

어떤 마음으로 대강절을 보내시고 성탄절을 맞이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 오신 주님께 집중하고 묵상하고 즐거워하는 성탄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축복합니다. 샬롬 🙂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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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어쩌면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사실.. 예술가들이나, 어떤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렇게 흡족해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걸작이라고 칭찬을 해도 자신이 보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이 보이는 법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만드신 피조물들의 세상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귀한 존재였던가요…

그렇습니다.. 저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렇게 귀한 존재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속에는 수많은 약점들이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린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때로 우리의 노력은 어이없이 무너져 버리기도 하고..
아무리 좋은 의미로 일을 해도.. 때로 우리의 일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여전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보기에 심히 좋구나..”

라고…

하나님께서 귀하다고 하시는데.. 하나님께서 보기에 좋다고 하시는데..
왜 우린 아직도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하나님께서 발견하신 우리 속의 아름다움을..
나 자신 속에서 발견하고.. 내 이웃속에서 발견하는..

그래서 왜 예수님께서 그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셔야만 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성탄절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샬롬…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이 홈페이지 관리하는 거..

역시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그려.. ^^;

뭐.. 첫술에 배부를리야 없겠지마는.. 계속해서 신경쓰고.. 글 올리고.
.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군요..ㅋㅋ

저기요…

혹시나..

여기저기 사이트 돌아다니시다가..

좋은 글 있음…

올려주세요… (\’\’ )

혹시 필요하시다면.. 뭐.. 개인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싶으시다면.. 게인 게시판 하나 뚝 떼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려.. ^^;

함께 만들어가는 홈피가 되었음 좋겠네요~ ^^

모두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