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작성자 : 가을향기

많은 원숭이들이 예수님을 어느 십자가로 안내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드는 게 아닌가.
원숭이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할 뿐이었다.

그 때부터 예수님은 이 세상의 수많은 십자가를 차례차례 살펴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님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졌다. 원숭이들의 꼬리는 축 쳐진 상태였다. 마침내 마지막 십자가를 가리키며 예수님이 말했다.

“십자가 위에 솟은 것이 무엇이냐?”

모든 원숭이들이 십자가로 시선을 옮겼다. 십자가 꼭대기에는 피뢰침이 솟아 있었다. 원숭이들은 팔딱팔딱 뛰며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꼬리가 다시 하늘로 솟구쳤다. 많은 원숭이들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것은 피뢰침입니다. 십자가를 높이 세우면 위험하거든요”

바로 그 때 예수님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놈들아 누가 십자가를 높이 세우라고 했느냐? 옆으로 넓게 퍼져도 부족하잖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5~26)

************************************************************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설마.. 그럴리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었고, 수천년간 하나님을 섬겨왔었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하셨다구요?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하게하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잡혀가시기 전 제자들과 이 세상을 위한 중보의 기도속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말씀.. 세상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래요.. 우린 어쩌면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커다란 착각속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어 놓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본체라고 착각하는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도록 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 자신이 우리 속에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우린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마음도, 하나님의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어린아이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바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는 모습이고 싶습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 8:4~7)

************************************************************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다른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또는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참 많이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전후를 살펴보면.. 이 말이 결코 축복의 말이 아님을 알게되는군요..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의 잘못을 말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욥의 자녀들이 죽은 것은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면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형통함을 주실 것이라는…

그렇습니다.. 우린 어느 한 부분만 보고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질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하나님의 참 뜻을 알기를 원하시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들만을 추려내어서 마음대로 적용시켜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린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내 입에 맞추어 달고 쓴 것을 판단해 버리는 우리의 모습은 아니길 조심스레 기도해 봅니다..

연못에 가득찬 개구리?%$@#$

한 농부가 읍내의 음식점을 찾아가 개구리 다리 백만 개를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음식점 주인은 어디서 그 많은 개구리를 잡았느냐고 했다.

“집에 개구리로 가득찬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농부는 대답했다.

“밤낮으로 울어대서 미칠 지경입니다”

몇 백 마리의 개구리를 팔기로 계약을 맺은 후 농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농부는 두 마리의 빼빼마른 개구리를 가지고 와서 울상을 지으며 더듬더듬 말을 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연못에는 개구리가 두 마리 밖에 없었어요. 이 두마리가 그렇게 시끄러운 소리를 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이미 응답하신 하나님..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

이 짧은 한 구절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너무나도 큰 사랑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은 분명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린 때때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실까 라며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분명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심지어 우리의 미래를 알고 계시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를 모두 알고 계시기에…

내가 부르짖기 전에 응답하시고,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다 들으실 것임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믿는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내게 이루어주시는 모든 일들은 분명 내게 필요한 것들이며, 내게 유익한 것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짧아서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기에, 순간의 상황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하나.. 하나님의 계획과 그 눈길은 우리의 평생을 지키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우리의 삶은 풍성할 것임을 믿습니다…

황금율..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12)

************************************************************

우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왠지 내가 존귀한 존재가 된 것 같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그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이고..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남을 대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닐까 싶군요…

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하라..

사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내가 먼저라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군요..

스스로 굳세게..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들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 2:4~5)

************************************************************

참..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있던 하나님의 모습과.. 어쩌면 조금은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내가 너희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너희 스스로 굳세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그저 도와주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힘을 내어 굳게 서서.. 우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알게합니다..

스스로 굳세게 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비틀거릴때 손을 잡아주는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혼자 힘으로 우뚝 섰을 때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 그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봅니다..

사면장

캐나다의 한 청년이 어느날 카드 놀이를 하다가 몹시 다투던 끝에 그만 이성을 잃고 권총으로 상대편을 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교수형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을 사랑하던 친척들과 친구들이 진정서를 준비하게 되었으며 이웃의 많은 사람들도 거기에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진정서가 주지사에게 전달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이었던 주지사는 진정서를 보고 아까운 청년을 사면해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지사는 사면장을 써서 주머니에 넣은채 성경을 손에 들고 형무소에 찾아갔습니다.

주지사가 형무소 감방으로 가까이 갔을 때 청년이 벌떡 일어나 철책 문으로 다가오며 소리쳤습니다.

“여기 오지 마시오! 보기도 싫소. 당신같은 사람은 벌써 일곱번이나 만났소. 나도 집에서 종교생활을 했단 말이오!”

“그러나 잠깐만. 내가 젊은이를 위해 가지고 온 것이 있으니…”

“듣기 싫어요!”

청년은 화를 내면서 소리쳤습니다.

“만일 당장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 간수를 불러 끌어내게 하겠소!”

“젊은이. 내가 젊은이를 위하여 가장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소.”

“내가 말하지 않소! 당장 나가지 않으면 간수를 부르겠소!”

잠시 망설이던 주지사는 복잡한 얼굴표정을 한 채 돌아서서 나왔습니다. 잠시 후 간수가 오더니

“방금 주지사님하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소?”

“뭐라구요? 주지사님이?”

“그렇소.. 내가 알기론 주지사꼐서 당신의 사면장을 가지고 온 것 같던데요..”

“오 하나님….”

그와 나의 다른 점

만일 그가 그의 일을 끝내지 않았다면 그는 게으르기 때문이고,
내가 일을 끝내지 않았다는 나는 너무 바쁘고 많은 일에 눌려있기 때문이고,

만일 그가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면 그는 수다장이이고,
내가 다른 이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고,

만일 그가 자기 관점을 주장하면 고집장이이기 때문이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개성이 뚜렷하기 때문이고,

만일 그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으면 콧대가 높기 때문이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순간에 복잡한 다른 많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만일 그가 친절하게 하면 나로부터 무엇을 얻기 위해 그렇게 친절하게 하는 것이고, 내가 친절하면 그것은 내 유쾌하고 좋은 성격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니

그와 내가 이렇게도 다른 것이 얼마나 딱한가!!